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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5. 22:26


일을 그만두고나면 한차례 열병을 앓는다는데, 난 정말 지독히 제대로 앓아버렸다. 난생처음 입원신세에 난감한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덕분에 새로운 영역으로 한발 내딛으며 확실한 선하나를 긋게된 것 같다. 어떠한 자세로 삶을 바라보아야 할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달까.

정감 넘치지만 알고보면 항암투병과 갖은 질병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어머니환자들의 이야기를 가만가만히 들으면서 내가가진 것에 한번더 감사하게 되었고,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무엇에 힘들어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에 대해 좀더 소상히 들을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게 어찌보면 행운이었던것 같다. 투정 그만부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좀 귀기울여 들어보고 내가 어느곳을 메우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하려고 그곳에 보내준것만 같았다. 자신들의 몸 챙기기에도 힘드셨을텐데 철부지 딸같은 저도 함께 챙겨주신것, 걱정해주신것 잊지 않을게요. 맞아요. 당신들은 선택받은 분들입니다. 시련을 품고도 이겨낼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이라 신이 그렇게 하셨을거에요. 부디 건강하고 활력있게 지금처럼 잘 지내고 쾌유하여서 따스한 햇살아래 즐겁고 홀가분하게 산책하실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출근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내일 무슨 수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듀티표에 얽메이지 않아도 되고 on-call 연락이 올까 조마조마 하지 않아도 된다. 사원증과 유니폼을 반납하면서 그제서야 마음 한켠이 꿈틀거리며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올라오더라. 이제 이 병원에서 내 사번은 존재하지 않는 사번이 되어버렸고 원내전산에 접근도 거부되어 버렸다. 당연한 것들이지만 칼같은 처사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피비린내와 긴장속에 땀흘리던 그시간들이 언젠가는 아득해지겠지.
그리고 그토록 지독하게 지냈음에도 결국은 그리워할테고.

Professional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마음에서 진정으로 녹아나와 일할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고 다친 마음들을 치유하고 못다한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고 열정을 잃을 줄 몰랐던 내 자신을 다시 찾아오고 싶다.

돈의 이끌림이 아닌 마음의 이끌림을 통해 움직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고, 이미 한 발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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