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yllic* - 기억들.

글&사진 절대 불펌금지
분류 전체보기 (702)
ⅰ. 낙서글 (153)
ⅳ. 사진 (165)
ⅴ. 여행 (57)
ⅵ. 혼잣말 (32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ALL REPORT


2013. 3. 30. 22:40

 

사진만이 기억하고 있는, 지나간 날의 어느 순간.

 

사진을 넘기다보면 내가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사진도 그렇다. 이 사진을 찍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정리해둔 폴더명으로 누구와 어디서 찍었는지 짐작만 할 뿐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건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우리의 뇌는 선별적으로 기억을 간직한다. 그리고는 선별해둔 기억에 매달리거나 그 기억이 전부라 생각하며 생각의 범위를 한정시켜 버리곤 한다. 이제와서라도 기억하고 싶다. 이 사진을 찍던 그날 불던 바람의 향기, 햇살의 온기, 나누던 대화들 분명히 많은것들이 있었을텐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게 어쩐지 서글프다. 이래서 사람들은 남는건 사진뿐이라며 그 시간속 의미를 되새기는것 보단 내용없는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걸까. 이렇다보니 가끔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 기억인지 믿을수 없을때가 있다. 내가 기억하던 그 사람의 대화, 그 공간속의 향기, 그 음식의 맛 혹은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내가 믿는게 맞는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종종 기억의 리셋이 필요해진다. 기억에 의지하고 믿고있는 무언가에 대해 구멍을 파고 깊이깊이 그 순간들 속으로만 파고들다보면 분명 왜곡은 일어나고 만다. 파내려간 그 순간과 함께 버무려야 할 기억의 요소들을 버려두니까 말이지.

 

근데 그래도 말이지, 가장 행복하던 순간을 떠올릴때나 가장 사랑받던 순간의 마음들과 온기를 떠올릴땐 내 기억이 왜곡된 것들이라 해도 굳이 리셋하고 싶지는 않다. 원래 사람은 믿고싶은대로 믿고 기억하고싶은 대로 기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게 어쩌면 조금더 현재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혹은 좀더 행복해지고 싶어서는 아닐까. 난 내 뇌를 믿는다. 아마 걸러낸 기억을  그나마 덜 아프게 그리고 더 즐겁게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는거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던 그 순간에 난 즐거웠을거라 생각된다. 즐거운 날이었고 수많은 즐거웠던 날들중 하나였으니까, 아마 셔터를 누르던 그 공기속 과거의 나는 행복했을거다. 행복한 하루였던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궁상맞게 추억을 곱씹는것 따위를 하고있지는 않으나, 그냥 내가 지내온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도 기억못할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내면서 행복한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낼테니까. 삶도 기억도 계속 그렇게 버무려지며 흘러갈테니까.

 

 

'ⅳ.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day.  (0) 2014.03.24
휴가.  (0) 2013.05.26
비움  (2) 2013.03.04
사실,  (0) 2013.02.11
이방인.  (2) 201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