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yllic* - 2020.12.12

글&사진 절대 불펌금지
분류 전체보기 (702)
ⅰ. 낙서글 (153)
ⅳ. 사진 (165)
ⅴ. 여행 (57)
ⅵ. 혼잣말 (32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ALL REPORT


2020. 12. 13. 08:13

이 공간의 존재 자체를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발을 들이지 않은 오랜 시간 동안 바뀐 것 없이 그대로 보존하며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십여 년 이곳에 안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아주 오랜 과거의 기록이라 생각했는데 가장 마지막 포스팅이 2018년이었던걸 보고 조금 놀랐다. 비공개 글로 한참 동안 힘듬을 토로했던 것 같은데 글을 쓰던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글 속에 설명되어 있는 그 수많은 이벤트들이 머릿속에 마구 스쳐 지나가서 감회가 새롭다.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그 당시의 바람대로 많은 것들이 안정되었고 남들처럼 불평 많은 직장인이 된 지 2년이 넘었다. 문제라면 나는 지금 코비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수많은 허들을 넘고 넘어 드디어 평범하게 먹고 놀고 일하고 여행 다니고 불평하고 소비하고 그러면서 사는가 보다 하던 찰나에 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판데믹을, 해외에 홀로 지내는 이 시기에 맞이하였고 심지어 판데믹과 정면 승부하며 싸워야 하는 의료진인 것이 코미디라면 코미디랄까. 뭐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인생은 이렇게 또 다이나믹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사하게도 코비드에 걸리지 않은 채로, 엄청 건강한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지낼 정도의 건강함을 유지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좀 지루할 틈이 있으면 좋겠다, 심심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치열하게 싸우던 일상의 터널을 통과하고 막상 심심한 시간을 마주하고 있자니 금세 그 감사함 따윈 잊고 이것저것 불평불만을 표하며 살고 있다. 원래 인간은 망각의 동물. 좋은 게 좋은 건지 좋은걸 누릴 땐 잘 모르는 법. 코비드 이전 시대에 우리가 누리던 그 많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악수와 포옹으로 전해지는 그 작은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우린 그땐 몰랐었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난 이 생활이 몇 년은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고립된 채 이 고난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나처럼 수동적인 인간이 그렇게 절망한 채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던 시간에 적극적으로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 나서고 시도하고 노력하더니 1년도 안돼서 백신을 만들어내었다. 난 정말이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절망은 인간으로부터 나오지만 희망 또한 이렇게 인간으로부터 나오는구나 싶은 마음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잘 지내며 올 한 해를 보냈지만 사실 나 스스로 조차도 모를 분량의 스트레스와 절망과 고독감과 싸워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백신을 만들어낸 과학자분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 절망과 고통이 큰 시간이었던 만큼 백신 우선 대상자가 될 것 같고 난 망설임 없이 맞고 그토록 원하던 정상적인 삶을 다시 향유하고 싶다. 이전보다 훨씬 더 커다란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소중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희망, 이라는 단어는 너무 눈부시게 밝은 느낌이라 어둠의 자식인 나는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이번만큼은 이 긴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는 희망이 눈앞에 주어졌다는 게 너무나도 기쁘다. 다 그렇게 각자의 희망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겠지. 이 시간을 여기에 기록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종종 들어와서 마음을 또 토해내야지. 예전과는 얼마나 결이 다른 불평불만들을 쏟아내게 될지 나조차도 기대가 돼.

'ⅵ. 혼잣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simple is the best  (0) 2021.06.19
2018.04.07  (0) 2018.04.08
Triligual  (0) 2017.08.06
오랜만에 근황.  (0) 2017.06.10
있을지도 모른  (2) 2017.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