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이 기억하고 있는, 지나간 날의 어느 순간.
사진을 넘기다보면 내가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 사진도 그렇다. 이 사진을 찍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정리해둔 폴더명으로 누구와 어디서 찍었는지 짐작만 할 뿐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건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우리의 뇌는 선별적으로 기억을 간직한다. 그리고는 선별해둔 기억에 매달리거나 그 기억이 전부라 생각하며 생각의 범위를 한정시켜 버리곤 한다. 이제와서라도 기억하고 싶다. 이 사진을 찍던 그날 불던 바람의 향기, 햇살의 온기, 나누던 대화들 분명히 많은것들이 있었을텐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게 어쩐지 서글프다. 이래서 사람들은 남는건 사진뿐이라며 그 시간속 의미를 되새기는것 보단 내용없는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걸까. 이렇다보니 가끔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 기억인지 믿을수 없을때가 있다. 내가 기억하던 그 사람의 대화, 그 공간속의 향기, 그 음식의 맛 혹은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내가 믿는게 맞는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종종 기억의 리셋이 필요해진다. 기억에 의지하고 믿고있는 무언가에 대해 구멍을 파고 깊이깊이 그 순간들 속으로만 파고들다보면 분명 왜곡은 일어나고 만다. 파내려간 그 순간과 함께 버무려야 할 기억의 요소들을 버려두니까 말이지.
근데 그래도 말이지, 가장 행복하던 순간을 떠올릴때나 가장 사랑받던 순간의 마음들과 온기를 떠올릴땐 내 기억이 왜곡된 것들이라 해도 굳이 리셋하고 싶지는 않다. 원래 사람은 믿고싶은대로 믿고 기억하고싶은 대로 기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게 어쩌면 조금더 현재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혹은 좀더 행복해지고 싶어서는 아닐까. 난 내 뇌를 믿는다. 아마 걸러낸 기억을 그나마 덜 아프게 그리고 더 즐겁게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는거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던 그 순간에 난 즐거웠을거라 생각된다. 즐거운 날이었고 수많은 즐거웠던 날들중 하나였으니까, 아마 셔터를 누르던 그 공기속 과거의 나는 행복했을거다. 행복한 하루였던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궁상맞게 추억을 곱씹는것 따위를 하고있지는 않으나, 그냥 내가 지내온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도 기억못할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내면서 행복한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낼테니까. 삶도 기억도 계속 그렇게 버무려지며 흘러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