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안의 울타리를 얼만큼 남겨두고 또 얼만큼을 걷어낼지,
그리고 원하는만큼의 울타리가 유지될수 있을런지,
이 또한 앞으로의 과제.
잔잔잔잔한 파동이,
서로에게.
서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그리고 또 서로에게.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또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무거운 삶을 정돈하고 가볍게 하고자 가졌던 시간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좋은기억들 누적하여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가지고있었던 고민의 무게는 조금도 덜해지지 않았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오히려 더해진것 같다는 기분은 왜일까.
여행의 기억을 묻어두고 현실에 집중하며 마음이 부르는대로 마음이 시키는대로 흐름타고 흘러흘러 지금이 되었지만 행복하다, 라는 느낌은 사실 없다. 무덤덤함 혹은 무감각해진 느낌에 점점 어두운 구석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있는 내 자신을 보곤 채찍질하며 어둠의 통로를 봉쇄하고 끌어내느라 바쁜 일상인것 같다. 그렇다고 그렇게 모든것이 절망적인것 만은 아니고 그리 절망할 것도 아니다. 그저 욕심을 버리면 되는것인데 역시나 그게 쉽지 않다.
마음의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우려하지말고 그냥 모조리 다 비우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운다, 라는건 어떻게 하는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모든것을 '내려놓는다'정도의 느낌은 알겠는데, 집착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많은것들을 내려놓고 한걸음 물러서있기는 한데 이게 좋아지는 길인지에 대해선 아직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통증은 없으니까 맞는가보다, 하고있다.
이미 뒤죽박죽 그리고 정돈됨을 잃어버린 여행의 기억들을 다시금 기록해야겠다라는 계기가 생겨서 여행사진을 다시 열어보았다. 벌써 아득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사진속 순간순간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여행기록장을 열어보지 않았음에도 기억이 난다. 아마 순서도 기억도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그래도 가끔씩이라도 하나씩 풀어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앙코르 왓, 관광객의 발길이 그나마 적었던 해자. 그 물결이 주는 평온함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왕의 목욕탕에서 가방이고 자전거고 내던지고 물에풍덩 뛰어들어 물장난, 진흙싸움을 하던 아이들을 바라보며 도대체 즐거움과 행복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왜 우리는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마음이 늘 무거워야만 하는건지 한참을 고민하며 앉아있었다. 관광객 앞에선 1달러를 외치며 물건을 팔던 아이들이 저렇게 해맑게 자유롭게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한켠으로는 속상하기도 짠하기도 했고. 어쩌면 그들은 내가 이런마음을 가진것에 대해 동정심을 가진다며 화를 낼지도 모를일이다.
우산을 쓰고 빗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새기며 해자주위를 한바퀴 거닐다가 만났던 할아버지. 어쩌다 눈이 마주쳤고 양손을 모으며 "쑤어 쓰데이"라며 인사를 건네드리니 조금 긴장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난생 처음봤다 생각이 들만큼의 환하고 순수한 미소로 화답해주신다. 뭉클하고 울컥해지는 마음으로 서로 환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지나쳤다. 이미 수많은 대화를 나눈것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반갑다는 느낌을 미소 하나만으로 주고받았고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렇게 사람들은 스치듯 위로를 건네주곤 했다. 사실 할아버지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해보고 싶었던것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가진 쓸데없는 고민들을 스르르륵 눈녹듯이 녹여줄수 있을것같단 혼자만의 착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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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을 걷는게 무슨 의미일까 라는 우리 나름대로의 토론하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눈물, 기쁨, 아픔, 고통, 살면서 겪는 온갖 감정들과 희노애락을 모두 겪는다는 면에서 까미노 길은 우리가 사는 삶의 축소판이다라고. 나혼자 나름 끄덕끄덕 도출해냈던 결론이 하나 있었는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었었다. 까미노 길에서 길을 헤맬때 노란 화살표만 찾으면 됐지만 삶에는 화살표따윈 없다. 그 길을 걸을땐 모든게 정화되고 흩어지고 혼란스러운 것들이 슬슬 제자리를 찾아가며 앞으로는 다 잘할수 있다라는 자신감또한 얻을수 있으며 새로운 삶을 잘 만들어 낼수 있을거란 막연한 믿음을 갖게된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물론 그런면도 있으나, 요즘 드는 생각은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그곳에서 잠시 최면에 걸려있었던건 아닐까 한다. 약간의 착각도 함께. 실제로 까미노 이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동안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워 우울증세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난 까미노 이후 바로 현실에 돌아오기보단 여행자의 신분으로 좀더 오래 지내다 온터라 그 괴리감이 그나마 좀 적었던것 같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당시에 내가 많은부분 착각을 했었던게 아닐까 하며 그 찬란하게 빛나던 마음을 조금씩 부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곳에서 얻었던 모든걸 부수고 있다는건 아니다. 현실과 그당시 생각하던 까미노 이후의 삶의 거리감이 한 100정도 되었다면 지금은 한 50정도로 낮춘 정도. 어쨌든, 삶엔 그곳에서 처럼 친절한 화살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옳은 길 바른 길도 없다. 까미노 길 이후에 어떠한 면이 달라집니까, 라는 질문에 "Nothing"이라 대답해준 한 호스피탈레로가 있었는데 그 당시엔 "헐, 그런게 어딨어" 라는 마음으로 반발심이 생겼지만 이제보니 그녀의 말이 정답이라는 생각도 든다. 삶이 달라질거라는 기대감, 달라졌으면 좋겠는 희망들로 한달여의 시간 차를 통해 삶을 잠시 들었다 놓을 뿐이지 그리고 분명 달라졌어, 라고 느낄 뿐이지 삶의 흐름은 그냥 그대로라는 것. 뭐 그래도 괜찮다. 실제로 달라졌든 달라지지 않았든 내가 어떻게 믿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래도 나에게 다가오는 삶의 향기정도는 0.1%라도 바뀔거라 생각하니까. 적어도 무언가 큰 경험을 한 이상에야 당연히 뭐든 변하기 마련이니.
삶이야 어떻게 흘러가든지간에, 언젠가 그 바람과 함께 밀밭이 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푸른 하늘아래 저 길을 다시 걷는길이 오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하고 강해지겠지.
Buen camino on your life, on my life.
속초의 바다가 처음이었던 나에겐, 이미 과하게 개발된 그곳은 그저 망연자실 한숨만 나오던 장소였다. 인공조형물과 빼곡히 들어찬 가게들 그리고 콘크리트 주차장.. 바다를 보러 온건지 휴양건물들을 보러온건지 헷갈릴만큼 내가 바라던 해변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버렸다라고 하기엔 이전의 속초바다를 보질 못했으니 좀 맞지 않는것 같지만 태초에 태어난 속초바다의 모습은 이게 아니라는것 만큼은 정말 확실하다. 사람손이 많이간 자연은 결코 아름다워질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많이 보고 겪지 않았던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걸까. 깨달을 새도없이 이미 사람은 자본의 영향에 너무도 진하게 물들어있다.
슬펐다.
경주시내 어디든 빼곡히 보이는 기와지붕들, 조금 낡았어도 정겹고 맛있는 가게들, 눈살찌푸려지지 않게 조화되고있는 불국사의 노점들, 황남빵과 찰보리빵, 도처에 널려있는 유물들, 해질녘 믿을수 없을만큼 환상적인 실루엣을 보여주던 석가탑과 다보탑, 밤새 내린 비에 축축해진 땅위로 떨어지는 벛꽂들, 친절한 사람들.
2011년 4월초의 경주는, 그 누구보다 그 어느곳보다 아름다웠다.
+ 다시 서울의 빈틈없이 들어찬 콘크리트와 사람숲에 발을 디딘뒤 무척 답답해져버렸다. 서울의 건물에도 높이를 낮추고 기와지붕을 씌워주고 싶다. 법으로 정해버리면 안되는걸까. 멀리 바라보고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보고 깊이 숨을 쉬며 손을잡던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 휴..
한산한 길가에 고요한 공기, 터벅터벅 걷는 소리 외엔 모든게 정지되어 있는듯한 시간.
겨울이 깊어갈수록 날카롭게 차가워지겠지만 소음과 사람에 치이는 서울시내 안에서 이토록 평온한 걸음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 때 뿐인것 같다. 해질녘 노을진 하늘도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해뜨기 직전 밝아오는 하늘과 그 위에 떠있는 눈썹달의 모습은 또 다른 아름다움과 짠한 기운으로 다가온다. 마치 꿈속을 걷는것같은 기분이랄까. 피로에 쩔어 떠지지도 않은 눈에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일지라도, 일반적인 기상시간을 조금 비껴가지 않으면 만나기 쉽지않지만 거의 매일매일 만나다보니 마치 내것인것만 같은 해뜰녘 시간만큼은 더없이 소중하고 좋다. 짙푸르게 깊은 하늘과 고요함이 좋다.
(뭐.. 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출근하며 맞이하는 것과 밤새도록 술마시다가 아침해를 보며 집에 들어갈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긴 하지만.. -_-;)
하늘은 그림판에서 색칠해놓은것처럼 식상하리만치 선명했고,
살랑살랑 바람에 낙엽들은 꽃잎 흩날리듯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차가운 밤공기에 새벽은 더욱 더 길고 깊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덧 가을은 이만큼이나 가까이 와있었다.
가을이란 계절을 이토록 가까이 느껴보는게 얼마만인지.
자주, 더 많이, 더 깊이 어우르며 지내고싶다.
입사이래 처음으로 6일 휴가받아 씐났고,
생전처음 네일케어 받고 맘에든다며 씐났고,
청명한 가을하늘이라 씐났다.
아주머니 단체관광객 사이에 앉아 그들 수다소리에 파묻혀 음악소리따위 들리지않는 기차라도 좋아,
으챠으챠 씐나게 소풍가는길.
이희~
사랑할 수 있을때 마음껏 사랑하라.
사랑만 하기에도 우리의 삶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