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yllic* - 알링턴 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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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22. 21:36



레이첼 커크스 / 민음사 / 2008

삼십대 중반에 다다른 다섯 여자들.
어릴적 가졌던 여러 꿈과 희망들, 아름답고 탱탱했던 젊은시절들을 뒤로 하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이상 '나' 중심이 아닌 '엄마' 혹은 '아내'라는 위치에 서서 그들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빛이 바래버린 자아를 움켜잡고 의미없는 시간들과 삶의 허무함 앞에 눈빛마저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그녀들은 누굴 위해,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짚어 보고 질문해보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은 냉정한 침묵만 치키고 있을 뿐이다.
그녀들의 그런 삶의 흐름은 그 어머니 세대의 흐름과 많이 닮아 있으며 그 어머니 세대도 같은 고민속에 정체되어 있었으나 큰 발전없이 그 자녀에게 고스란히 내려와 버렸다.
책 속 그녀들의 모습과 생각들은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생각나게 해주었지만 자극적인 사건의 연속인 그것과는 달리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정주부들의 머릿속을 상세히 읽게 해주어 보다 현실과 맞닿게 해주었다.

지난번 포스팅에도 언급했지만, 좀 두렵다.
나도 이들처럼 내 미래를, 내 삶을, 내 자아를 잃어버린 채 자녀와 남편으로 내 삶의 시계추가 중심이 변화되어 버리게될까. 직장에 있는 많은 유부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들을 지켜보면 대체로 공통된다. 자녀양육의 책임은 모두 아내가 중심이 된다는 것. 아이를 낳고 직장일을 유지한다고 해서 예전과 변함없는 그 온전한 자아와 동거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남편이, 시댁이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자녀양육의 실질적인 매니져는 아내가 될 수 밖에 없는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듯 하다. 사실, 아이를 보기위해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별로 없지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좀 비효율적이기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 중심은 아내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일반적인 '아내'가 되고 싶지 않은건 철없는 이기심일까. 적어도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고집을 버릴수는 없을 것 같다.

근데 책 속의 아내들의 생각과 상황들을 보면서, 그 남편들의 공허함도 만만치 않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번외편으로 남편들의 속이야기를 적은 '알링턴파크 남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가 나와도 꽤 재밌을것 같다.

남자들은 모두 살인자라고 줄리엣은 생각했다. 모두 다. 그들은 여자들을 살해한다. 여자들을 손에 넣은 뒤 서서히 조금씩 죽인다.   - p.31
그러는 사이 이 이상한 삶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삶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 자연의 산물이며 육체를 가진 존재임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 베네딕트를 만났고, 당황한 그녀 앞에 거대한 협곡처럼 험난한 도전이 닥쳤다.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 어머니의 삶이 조금 황폐해진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에 불과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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